책(한국소설) :: 딸에 대하여,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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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하여, 딸에 대하여


얼마 전, 어머니랑 친구랑 셋이서 와인과 함께 밤새 얘기했다. 그 때 어머니는 자식이란, 그리고 또 딸이란 내게있어 분신과도 같다고 생각했다고. 이 마음을 떼어놓고 이 아이가 하나의 존재, 자아라는 것을 인정하고 제멋대로 자기 생각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고 얘기하셨다. 그 과정을 애써 모른 척하고 나를 떼어놔주길 기다렸던 딸로서...이 책 안에서 의견이 항상 갈려 다투는 어머니와 딸에 계속 나의 어머니와 내가 생각났다. 오직 내가 하고싶은 미래에만 집중했을 때, 내 인생은 내 것인데 왜 사람들이 가타부타 말을 덧댈까. 그런 고민을 했던 적이 더러있었다. 산다는 건 사람들과 뒤엉켜 같이 살아가는 거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운 사람은 더 강한 끈으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고 내 삶의 방향에 대한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서 당연하게 서로를 이해시켜야하기에 독단적인 선택은, 주변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보자면 내 기준으로 썩 좋지않은 마음이었다는 걸 이제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이 있다면...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듣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던 동성애자에 대한 얘기가 내 딸에 관한 얘기라면? 이 영역의 이슈는 세대를 불문하고 사람 기준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층이 훨씬 많다. 정신질환도 몸이 아픈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은 항상 여기저기 부딪히고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태라는 것이 느껴진다.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가상으로 느낀 기분. 그리고 나와 분리시켜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 시대를 이끄는 세대가 바뀐다. 이제는 나이가 든 과거 세대에게 현재의 세대가 바라는 것들이 생겨난다. 근데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출장가는 길에 팀원과 얘기를 하면서 지금 청년층인 우리가 생각하는 걸 이제는 60대, 70대가 된 그들에게도 따르라고 말을 해야만 하는 걸까라고 얘기하셨다. 그 말을 듣고선 든 생각은 과연 나이가 들어서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세대가 내게 왜 그렇게 행동하냐고 물으면 나는 바꾸도록 노력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변화하는 것들을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란 생각들.


오랜만에 블로그를 켜서라도 꼭 저장하고 싶었던 책.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어머니와 딸의 관계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있는 세상의 기준 등 등에 대해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제일 위에까지 다다르면 바뀌어야하는 문제들과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지만 이상한 것들이 내게 의문을 준다. 바쁘면 자꾸 잊어버리는 것들...내가 살면서 고민하며 살아가야하는 것들을 다시 자각시켜줘서 이 책이 좋았다.







p.30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을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p.36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 동안은 조건 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p.123

그린이 불행하지 않다면요? 누구나 각자 살고 싶은 삶이 있는 거잖아요.

살고 싶은 삶? 너희 부모님은 네가 이렇게 사는 거 아시니? 도대체 어떤 부모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있어. 삶이 어디 자기 한 사람 것인줄 아니? 그런 삶은 없어.


p.127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예민하게 알아채고, 알게 된 것을 말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뭐든 모른 척하고 침묵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라고 이렇게 늙어버렸다.


p.153

딸애는 숨기거나 감추는 법이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은 가진 적도,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중략) 그건 딸애가 아직 젊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젊다는 건 어리석다는 것이니까.


p.156

이건 이해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해해 달라고 사정해야할 문제도 아니고요. 이건 그냥 권리잖아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갖는 거요.


p.191

상주는 보통 남자분이 하시는데요. 남자분은 안계세요? (중략)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안된다는 법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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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내 작품해설] 실은, 어머니에 대하여 - 김신현경

가족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할만한 것은 죄다 혈연이나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데다 이 또한 지난 20년 동안 해체, 양극화되어 온 탓에 ㅇ리가 마주하게 된 세상은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아무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지옥도의 한 풍경이 되었다. 이성 간의 섹스가 주는 쾌락이 굳건한 가족 관계의 보증서라도 되는 듯 여기는 화자의 생각이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적인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실은 '그것밖에'없는 관계지만, '그것조차' 없는 관계가 과연 믿을 만한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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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 문장은 운명론이 아닌 존재론이다. 여성의 그림자 노동을 매개로 이윤을 축적하는 자본주의에서, '여성임'을 일종의 신분으로 규정한 호주제가 폐지된 지 채 10년도 안 된 한국에서, 이 모두를 최대한 활용해 신분적 비정규직제를 효과적으로 정착시킨 한국적 신자유주의하에서 여성은 필수적이되 제외되어야 하는 구조적 배제의 자리에 있다. 이성애 가족은 이런 여성들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간주되는데, 이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사는 레즈비언에게 불안정성은 그 자체로 그녀들의 정체성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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