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과 서른 그 어디쯤에서 느낀 사회적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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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되면 괜찮아져요. - JTBC드라마 '멜로가 체질'

 

 

 

스물 여덟이 되던 해, 나이를 얘기하면 어른들께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내일 모레 서른이네' 였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니 '내년에 서른이네'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었던 한 마디였지만 듣다보니 나 지금 시한부처럼 서른에게 다가가고 있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미지의 끝에 도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른을 지나온 사람들'은 내게 서른임을 상기시키며 어린 아이를 어루달래듯 다독거렸다. 

 

역술적으로 '아홉수'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사주에서 9가 강한 금(金), 총칼을 의미해 '악수'로 보기도 하지만 반론도 많다.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 중앙회장은 "고구려의 한 마을에서 전염병으로 유독 19, 29, 39살들이 죽어나갔다는 소문이 잘못 전이된 것"이라며 "악재는 개인별 사주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고 단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나이 앞자리수가 바뀌는 29살은 올해 따라 연말을 맞는 심경이 복잡하다. 준비된 상태에서 서른을 맞고자 하는 계획은 종종 실패하고, 주변 기대감을 의식해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직장인 전모씨(29·여)는 "내 29살은 핍박받고 험난했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돈도 없고 노력해도 인연은 안 나타나고, 연말이 될수록 조바심이 들었다"며 "한국에서는 여자 나이 30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나. 스스로 의식해서 부담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른을 앞둔 이들이 모두 우울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뭐 별 거 있냐"는 '쿨한' 반응부터 "인생은 서른부터"라는 기대감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있으니,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문모씨(31)는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가 되기는커녕 되는 게 없는 나이"라고 서른살을 회고한다. 서모씨(29)는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아홉수를 크게 거론하지 않지만 서른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압박감이 커진 건 사실"이라며 "결혼과 돈, 직장에 대한 고민이 현실화되고 깊어진다"고 말했다....

-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 '아홉수, 잘 보내셨습니까? 서른살, 안녕하십니까?'

 

서른이 되기 전, 스물 아홉부터 서른이 내게 온다. 아홉수에 대해 여러 번 얘기하던 어떤 이는 자신은 아홉수가 너무 험난했다며 내게 아홉수를 조심하다고 일렀다. '글쎄. 인생이 스물 아홉만 험난한걸까. 괜히 더 아프게 느껴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뭉게뭉게 들었고, 그 말에 난 내 모든 20대는 매일이 아홉수였다고 생각했다. 매일 힘든일 투성이였지만 난 그걸 이겨내왔고 앞으로 그 힘든 일의 무게는 20대와 비할바없이 30대에는 더 커져서 내게 올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걸 이겨내어 의미있는 30대를 보낼거라고.

 

어릴 적부터 나는 서른이 좋았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사회적으로 서른이 주는 의미가 크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고 사회적 의미가 큰 만큼 내가 거는 기대도 컸다. 친구들 중 어떤 이는 서른이 별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거나 어떤 이는 서른이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서른에게 주위가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했기에 걱정과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최근 가까운 어른분들과 얘기를 하던 도중 역시나 내게 '이제 서른이네'라는 얘기를 하셨다. 그리고 서른을 맞이하는 기분은 어떻냐는 말은 덤이었다. 자연스럽게 서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같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서른이 스물과 같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 개의 긴 챕터가 끝이 나고 새로운 챕터를 열면서 앞으로의 얘기를 새롭게 써갈 수 있는 하나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새로운 챕터가 막막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결혼과 돈, 직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기 때문이다.

 

20대를 위한 텀블벅 프로젝트, 20대의 시간을 기록하는 책

 

보통 20대 모두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학업과 다양한 경험이다. 사람들은 때로 20대가 그저 아릅답게 빛나기만 해도 충분한 시기라고 말한다. 20대의 한 해 한 해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 있듯이. 하지만 30대가 되면 여성과 남성의 기준이 좀 달라지는 건 사실이다. 친구들을 보아도 서른의 여자들은 벌써 결혼에 대한 압박감을 주위로부터 받기 시작한다. 오히려 서른의 남자들은 이제 시작이라며 아직 결혼생각하기는 이르다고 말한다. 대신 성공이나 돈에 대한 압박감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온다. 20대가 독립하지않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않지만 서른이 되면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나이인 것 같다. 서른에게는 좀 더 많은 사회적 잣대를 들이댄다. 굳이?

 

"사회 변화로 서른살이란 기준은 어찌 보면 과거의 유물 같은 것" 정서적으로 서른살은 청소년기(25세) 이후 완전히 성인으로 정착하기 이전 단계로, 법적인 보호와 경제적 지원 없이 직업, 배우자 등 개인의 영역을 개척하고 정착해야 하는 새로운 스트레스와 과제수행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 반건호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빠르게 시간을 지나온 이들이 서른에 도착했을때, 서른은 한 번 쯤 뒤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마흔과 쉰 그리고 다른 나이대의 시작도 그러할 것이다. 그 나이의 시작점에 선다는 건, 다른이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어느 정도에 있는지 측정하게 되는 기준이 있는 것과 같다. 별로 신경쓰지않아도 되는 비교점에서 비교를 시작하면 한없이 걱정과 불안감이 몰려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나에게 집중한다면 서른의 의미가 크게 신경쓰일까? 그냥 내가 가야할 길만 보일 것이다. 내가 할 일들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써내려가면서 가장 뜻깊은 또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삼십대가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몇 살 때 뭘 해야 한다는 암묵적 규범을 타인에게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문화가 강해 계획한 것들을 충분히 이루지 못한 경우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의지와 무관한 생물학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나이듦을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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